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흰>의 순수함과 깊이의 감각, 독특한 서술 방식, 느낀점

by 스토니책 2024. 12. 11.

흰 (한강 作)

1. 흰이 선사하는 순수함과 깊이의 감각

소설 흰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단순함만큼이나 소설의 내용도 단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페이지를 읽어 나가면서 이 책이 단순히 색깔로서의 '흰색'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흰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모든 '흰색'을 통해 삶과 죽음, 순수함과 무게감, 그리고 그 사이에 숨겨진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특히 이 소설은 단순한 서사 구조를 넘어, 한 편 한 편의 짧은 에피소드와 에세이가 연결되며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완성해 나간다. 흰색과 관련된 다양한 사물들, 예를 들어 눈, 흰 천, 태아 등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데, 이 모든 것이 저자의 손길을 거치면서 단순한 물질적 의미를 넘어서 삶의 깊이 있는 상징으로 변모한다. 책을 읽다 보면 이 작품이 단순히 단어를 나열하는 소설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서정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문장은 단순하지만 여운이 크다. 흰색이 상징하는 모든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과정 속에서 독자로서 나는 자연스럽게 내 삶 속에서의 흰색의 역할과 의미를 돌아보게 된다. 그것은 단지 색깔 그 자체가 아니라, 기억과 감정, 그리고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흰을 읽는 동안, 나는 내가 과거에 지나쳐왔던 순간들 속에서 흰색이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해왔는지를 다시금 상기하게 되었다.

2. 감정의 여백을 남기는 흰의 서술 방식

흰은 우리가 흔히 읽는 소설들과는 조금 다르다. 이 작품은 구체적인 사건과 뚜렷한 클라이맥스를 중심으로 서술되기보다는, 흰색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단편적인 이야기를 통해 독자의 감정 속으로 천천히 스며든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마치 한 폭의 여백이 많은 동양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는 흰색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흰색 그 자체를 과도하게 정의하거나 제한하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 스스로 흰색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떠올리도록 여지를 남긴다. 이를테면, 저자가 묘사하는 눈 내리는 풍경이나 태어날 아이를 위한 흰 천의 이미지는 매우 구체적이지만, 그 감정의 해석은 독자에게 열려 있다. 누군가는 그 장면에서 따뜻함을 느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차가운 슬픔을 떠올릴 수도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여러 번 페이지를 덮고 잠시 생각에 잠기곤 했다. 소설 속 이야기들은 짧지만 강렬한 감정을 남겼고, 그것은 마치 흰색의 여백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는 느낌을 주었다. 또한, 흰색이라는 색이 갖는 양면성을 통해 희망과 절망,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모습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저자의 서술 방식은 매우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감정을 한꺼번에 몰아치는 힘이 있다. 이러한 독특한 글쓰기 방식은 내가 흰이라는 책을 계속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3. 독자로서 흰을 통해 얻은 삶의 성찰

흰은 단순히 독서의 경험을 넘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독자로서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내 삶 속에서 흰색이 상징하는 것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흰색은 단순히 깨끗함이나 순수함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상실과 고독, 그리고 시작과 희망까지 모두 아우르는 색깔임을 깨달았다. 책 속의 이야기들에서 나는 흰색이 단지 감정의 빈 공간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 빈 공간을 채워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는 단순히 색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모든 상실과 희망을 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삶의 끝에서 맞닥뜨리는 죽음의 흰색은 오히려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는 색으로 다가왔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강하게 느낀 점은, 흰색은 단순히 '없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어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비어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공간을 채워가는 것은 바로 우리의 경험과 기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자로서 흰은 단순히 한 번 읽고 끝낼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삶의 어느 순간에 다시금 꺼내 들고 나만의 흰색을 발견할 수 있게 하는 소중한 동반자와 같다. 흰색이라는 한 가지 색깔로 이토록 깊은 이야기를 풀어낸 저자의 글솜씨에 감탄하며, 나는 앞으로도 이 책을 내 마음의 서재 속 가장 특별한 자리에 두고 싶다. 흰은 그저 소설을 넘어, 나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